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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이 키우기

애완용 거북이를 키우기 시작한 이유

by 쪼꼬비 2022. 9. 22.

지금은 애완동물 범위가 상당히 넓어져서 거북이를 비롯한 뱀, 개구리 등 파충류와 양서류를 키우는 사람들의 인구가 거의 1천만에 가깝다고 합니다. 강아지, 고양이에는 못 미치지만 거북이란 생물도 상당히 애완용으로 매력 있는 생물입니다. 오늘은 제가 거북이를 다시 키우게 된 이유를 설명드리겠습니다.  

 

 

 

1. 거북이를 처음 키웠던 기억 

 

지금 40대 후반이니까 거의 30년 전의 일입니다. 제가 중학생일 때 우연히 학교 앞 문방구에서 청거북을 샀습니다. 당시에는 문방구에서 작은 청거북을 많이 팔았습니다. 청거북은 지금 명칭으로 하면 붉은귀거북입니다. 

 

사람들이 하도 방류를 많이 해서 생태계를 혼란하게 만든다고 하여 생태교란종으로 지정된 붉은귀거북이 바로 청거북입니다. 잡식성으로 생존력이 매우 높아서 당시 초등학생과 중학생들이 호기심에 구입을 많이 했습니다. 

 

저도 그렇게 거북이를 처음 만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거북이를 키울 때 많은 장비가 필요했지만, 그때는 작은 플라스틱 컵과 사료 봉지 하나로 거북이를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5년을 키웠습니다. 공부할 때마다 작은 컵의 거북이를 보면서 서로 대화도 하고 위로도 하면서 함께 했습니다. 

 

제가 키웠던 거북이는 제가 고등학생이 되어 학업이 바빠진 이후 잘 돌보지 못해 머물던 플라스틱 통을 탈출해서 사라졌습니다. 사실 5년이 흐르는 동안 거북이가 커졌는데 적당한 수조를 만들어 주지 못한 탓도 있습니다. 

 

걱정이 되어 한동안 찾았는데 발견되지 않아 포기했었습니다. 그러다가 2개월 뒤에 베란다 하수구 구멍 위에서 죽은 청거북을 발견했습니다. 아마도 비가 오니까 베란다 하수구에서 떨어지는 물을 맞기 위해 어디선가 기어 온 듯했습니다만, 기력을 다해서 그만 하늘로 떠난 것 같았습니다. 

 

이 기억이 저의 첫 번째 거북이에 대한 것입니다. 아무런 스킬도 없이 물과 사료만 주고 5년을 키웠으니 어렴풋이 거북이 사육은 어렵지 않다는 인식이 심어져 있었습니다. 

 

 

 

2. 딸이 키우던 거북이가 모두 죽었을 때 

 

그 이후 30년이 지나면서 결혼도 하고 예쁜 딸도 낳았습니다. 녀석이 벌써 초등학생이 되었을 때 제가 어렸을 때와 같이 거북이에 대해 관심을 보였습니다. 저는 딸에게 제가 느꼈던 거북이 키우기의 재미를 주기 위해서 청계천 파충류 거리에 가서 서든 페인티드 3마리를 사주었습니다. 

 

작은 거북이 다리 모양의 육지도 만들어서 작은 헤츨링들이 육지에 올라가 쉴 수 있도록 해 주었습니다. 며칠 동안 딸은 열심히 물도 갈아주고 먹이도 주고, 노는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았습니다. 

 

그런데, 불과 일주일이 지나고 나자 거북이 3마리가 모두 거북이 육지 위에서 죽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 수 없었고, 딸은 슬퍼서 눈물을 떨구었습니다. 결과가 비극으로 끝나게 되어 딸은 그 이후 거북이에 대한 취미를 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해를 할 수 없었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거북이 키우기는 매우 단순해서 물 갈아주기만 열심히 하고 사료만 몇 톨 넣어주면 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뒤처리를 해 주고 가만히 생각하다가 도저히 의문이 풀리지 않아 제가 직접 거북이를 다시 키워봐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제 거북이 사육이 번째 6년이 되었습니다. 참 별 것 아닌 계기로 시작했는데 벌써 6년이 흘렀습니다. 이제는 키우는 거북이가 수명을 다할 때까지 잘 키우는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생각해 보니 거북이는 깨끗한 물과 사료 약간만 있으면 충분히 키울 수 있는 생물이 맞았습니다. 그때 죽은 작은 거북이 3마리가 세상을 떠는 것은 정말 미스터리 한 결과였던 것입니다. 

 

 

3. 30년 만에 다시 시작한 거북이 키우기 

 

제가 30년만에 다시 키우기 시작한 거북은 토종 자라입니다. 이제는 붉은귀거북을 찾아볼래야 찾을 수 없는 종이 되었고, 청계천 파충류 상가에서 골라보니 대부분 거북이 외래종이라 한번 키우게 되면 함부로 방류를 할 수 없었습니다. 

 

생태파괴의 위험이 있어서 법적으로 외래종 거북은 방류가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생각해 낸 것이 바로 토종 거북이었습니다. 한국 토종 생물이기 때문에 키우다가 어떤 문제가 발생해도 근처 하천에 놓아줄 수 있는 장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미리 키우지 못할 상황까지 염두에 두고 키울 거북이를 고른 것은 어쩐지 비겁한 처사였지만, 그만큼 다시 거북이를 키우기 전에 저는 신중했습니다. 

 

예전에는 문방구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었던 거북이는 이제 전문 매장이 아니면 구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저는 토종 자라를 어디서 구하면 좋을지 한동안 수소문하다가 용봉탕 식당에 식용 자라를 공급하는 자라 농장에서 애완용 자라를 일부 판매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검색을 하다 보니 한 자라 농장에서 1마리에 1만 원 정도에 판매하는 것을 발견하고 구입을 했습니다. 생물을 택배로 구입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지만, 저의 첫 번째 토종 자라는 택배로 도착했습니다. 

 

벌써 오래된 일이지만, 당시 토종 자라가 무사히 전라도 자라 농장에서 서울까지 올 수 있을지 밤새 걱정했던 것 같습니다. 시름시름 앓다가 죽으면 어떡할지도 걱정하고, 도착했을 때 죽어서 오면 어떻할지도 고민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이 맞이하게 된 토종 자라 헤츨링은 건강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저의 거북이 키우기는 6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다만, 첫 거북이로 맞이한 토종 자라는 4년간 잘 성장하다가 저의 부주의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보석 거북이와 커먼 머스크를 키우고 있고, 작년에 다시 토종 자라 헤츨링을 영입하여 이제 1살 된 토종 자라까지 포함해 총 3마리의 거북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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